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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BI 지문 찍으러 UPS에 갔다가 로션까지 사 온 날

by 클로이와아폴로 2026. 9. 27.

한국에서 같이 살아보려고 비자를 준비하는데 FBI 범죄경력증명서라는 서류가 나왔다.

FBI라는 이름부터 좀 거창하게 느껴졌다. 우리는 그냥 한국에서 살고 싶은 건데, 준비하다 보니 미국에서 범죄경력을 확인하는 서류까지 챙기게 된 거다.

이 서류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지문 등록을 하러 UPS에 갔다. 그런데 이날은 서류보다 손가락 때문에 진이 빠졌다.

지문이 안 찍혔다.

한 번 잘 안 된 정도였으면 이렇게 기억에 남지도 않았을 것이다. 기계가 지문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해서 계속 다시 해야 했다. 손가락을 대고, 안 되고, 또 대고. 그걸 반복하고 있으니 점점 답답해졌다.

내가 보기에는 기계가 영 시원찮았다. 왜 이렇게 인식을 못 하나 싶었다. 그렇다고 그 자리에서 기계가 문제인지, 손가락 상태가 문제인지 알 수 있는 것도 아니었다. 어쨌든 지문 등록을 마쳐야 하니 계속 해보는 수밖에 없었다.

지문 찍다가 로션을 사러 갈 줄은 몰랐다

계속 안 되니까 손이 너무 건조해서 그런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 결국 로션까지 사서 발라봤다.

지문 등록하러 UPS에 갔다가 로션을 사게 될 줄이야.

원래 목적은 범죄경력증명서를 준비하는 것이었는데, 그 순간에는 서류고 뭐고 기계가 지문을 읽어줬으면 좋겠다는 생각뿐이었다. 로션을 바르고 다시 손가락을 대보고, 또 인식이 되는지 확인했다.

그렇게 기계 앞에서 보낸 시간이 한 30분은 됐던 것 같다. 정확히 시간을 재지는 않았지만, 지문을 인식시키려고 한참 애썼던 건 기억난다.

다른 일을 하면서 보내는 30분과 같은 동작을 반복하면서 보내는 30분은 느낌이 달랐다. 이걸 하고 나면 다음 단계로 넘어갈 수 있는데, 바로 앞에서 계속 막히니까 더 길게 느껴졌다.

다행히 결국 지문 등록은 마쳤다. 다만 로션 덕분에 된 건지, 여러 번 시도하다가 인식이 된 건지는 모르겠다. 우리도 당시에는 뭐라도 해보자는 마음으로 로션을 사서 발랐던 거다.

준비물 목록에는 안 나오는 일

비자 서류를 알아볼 때는 서류 이름부터 보게 된다. 무엇이 필요하고, 어디에서 준비할 수 있는지 확인하는 식이다.

그런데 실제로 하러 가면 이런 일이 생긴다. 지문 등록이 필요하다는 것까지는 알았지만, 기계 앞에서 30분 가까이 씨름하게 될 줄은 몰랐다. 로션을 사게 될 거라는 건 더더욱 몰랐다.

그날 우리가 한 일만 짧게 적으면 ‘UPS에서 지문 등록’이다. 한 줄이면 끝난다. 하지만 내 기억에는 손가락을 계속 대보던 일과 로션까지 사서 발랐던 일이 훨씬 선명하게 남아 있다.

한국 정착을 준비하면서 힘들었던 게 꼭 큰 문제만은 아니었다. 서류 하나를 준비하는 중에도 예상하지 못한 데서 시간이 걸렸다. 주민센터에서는 남자친구의 옛 기록을 찾느라 이것저것 확인했고, 미국에서는 지문이 잘 안 찍혀서 애를 먹었다.

하나씩 처리하고는 있었지만, 막상 해보기 전에는 어디서 또 막힐지 알 수가 없었다.

그래도 이날은 지문 등록을 끝냈다. 기계 앞에서 계속 손가락을 대고 있던 시간이 끝났다는 것만으로도 다행이었다. FBI 범죄경력증명서를 준비한 일을 떠올리면, 나는 지금도 서류보다 UPS에서 샀던 로션이 먼저 생각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