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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과 방콕을 거쳐, 한국계 미국인 남친과 한국에서 살아보기로 했다

클로이와아폴로 2026. 9. 23. 05:08

처음부터 한국에 와서 살 생각이 있었던 건 아니다. 우리는 뉴욕에서 직장을 다니고 있었다. 나는 20대 초반에 유학을 갔다가 미국에서 취업했고, 남자친구와는 직장에서 만났다. 남자친구는 일곱 살 때 미국으로 이민을 가서 쭉 그곳에서 살던 한국계 미국인이다.

그러다 남자친구가 회사를 그만두게 됐다. 정확히 말하면 잘린 거다. 나도 그때 회사를 그만 다니고 싶었다. 그러니 자연스럽게 앞으로 어디에서 살지 이야기를 하게 됐다.

그때 나온 곳이 방콕이었다.

“우리 방콕에서 살아볼까?”

그래서 방콕으로 갔다. 그런데 막상 가보니, 내가 지내고 싶은 곳은 아니었다.

방콕에서 지내보니 내가 뭘 중요하게 생각하는지 알겠더라

내가 방콕에서 가장 불편했던 건 산책할 곳이 마땅치 않다는 거였다. 우리가 지내던 곳에서는 편하게 걸어 다니기가 어려웠다. 물도 깨끗하게 느껴지지 않았고, 그런 생활환경이 계속 신경 쓰였다.

누군가에게는 잘 맞는 도시겠지만 나는 아니었다. 방콕에서 시간을 보내면서 자꾸 ‘여기서 계속 살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내 대답은 점점 아니라는 쪽으로 기울었다.

가보기 전에는 산책할 곳이 그렇게 중요한 줄 몰랐다. 그런데 막상 밖에 나가서 편하게 걷는 게 어려우니까 그게 꽤 크게 느껴졌다. 어디에서 살지 생각할 때 이런 일상적인 부분도 봐야 하는구나 싶었다.

그때는 좀 성급하게 ‘아, 나는 동남아에서 사는 건 아닌가 보다’라는 생각까지 했다. 물론 방콕에서 지낸 경험만으로 다른 곳까지 다 알 수는 없다. 다만 그때의 나는 방콕에서 더 오래 살아보고 싶은 마음이 들지 않았다.

그러다 결국 이런 말이 나왔다.

“이럴 바에는 그냥 한국 가자. 한국에서 살아보자.”

나에게는 돌아가는 곳, 남자친구에게는 어릴 때 떠난 곳

한국은 나에게 아예 새로운 나라가 아니었다. 미국에서 오래 지냈어도 내가 자란 곳이고, 말도 편하게 할 수 있는 곳이었다. 방콕에서 생활이 잘 맞지 않는다고 느끼니까 한국이 더 자연스럽게 떠올랐다.

남자친구도 한국에서 같이 살아보고 싶어 했다. 다만 나와는 조금 달랐다. 한국에서 태어났지만 일곱 살에 미국으로 갔고, 그 뒤로는 미국에서 쭉 살았다. 성인이 된 뒤 한국에서 생활을 꾸리는 건 또 다른 일이었다.

당시에는 그 차이를 깊게 생각하지 않았다. 나도 한국 사람이고 남자친구도 한국계니까, 한국에 가서 집을 구하고 같이 살면 되겠지 싶었다.

한국으로 오기로 한 데 거창한 이유가 있었던 건 아니다. 뉴욕에서 계속 직장을 다니던 생활에 변화가 생겼고, 다른 곳에서 살아보고 싶어서 방콕에 갔고, 막상 지내보니 나와 맞지 않았다. 그러니 한국에서도 한번 살아보고 싶었다.

그래서 우리는 한국으로 왔다. 집부터 구하고 둘이 생활하기 시작했다.

집을 구하면 일단 된 줄 알았다

그런데 한국에서 같이 살기 시작하니 생각하지 못했던 문제가 나왔다. 남자친구가 한국계라는 것과 한국에서 계속 살 수 있다는 건 별개의 일이었다.

남자친구는 미국 시민권자였다. 나는 한국에 돌아와 살면 됐지만, 남자친구는 한국에 얼마나 머물 수 있는지부터 알아봐야 했다. 우리는 당시 체류할 수 있는 기간을 알아보고 나서야 장기적으로 살려면 따로 준비가 필요하다는 걸 알았다.

나는 미국 영주권자라 미국 쪽에서 챙길 일도 있었다. 같은 집에서 같이 살기로 했는데, 각자 확인하고 준비해야 할 것은 달랐다.

방콕에서는 어디에서 살고 싶은지를 고민했다면, 한국에 와서는 여기서 같이 살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알아보기 시작했다.

그때부터 비자를 찾아봤다. 한국에 와서 집까지 구했는데, 이제 남자친구가 계속 지낼 방법을 찾아야 했다. 우리가 나중에 ‘교포 비자’라고 부르게 된 F-4 비자도 그 과정에서 처음 알게 됐다.